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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O_397328
일 자
2025.10.14 17:02:19
조회수
270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군번도 계급도 없이 목숨 바쳐 싸웠던 무명 용사들 ★6·25비정규군 8240부대 ◆KFN스페셜 ‘대한민국은 당신을 ...
국방홍보원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watch?v=53RVdJTfpVQ 6·25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7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고향은 커녕 자신의 존재조차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무명의 용사들이 있다. 대부분 고향이 이북 출신이었던 대원들, 군번도 계급도 없이 오직 조국을 위해 그리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청춘과 목숨을 바쳤던 비정규군 - 바로, 6·25전쟁영웅 8240부대다. 6·25의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들은, 우리가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이자 자부심이기에...이 다큐멘터리는 8240부대의 헌신과 희생을 집중 조명하고자 했다. 대한민국은 그들을 잊지 않았기에... □ 어느 미군 예비역 대위의 사부곡 여기, 이역만리 미국 땅과 고국인 한국을 오가며 자신의 아버지를 기리는 초로의 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 스토이, 한국 이름 최혜정. 20년 간 미 육군에서 복무한 예비역 대위다. 2009년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 故 최경진씨는 6·25참전용사다. 딸은 그런 아버지와 아버지의 전우들의 업적과 희생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며 기념비를 세우고,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많은 이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비정규군 특수부대’-국군 특전사의 뿌리로 평가받는 8240유격대원이었다. □ 군번도 계급도 없이 오직 조국을 위해 – 6·25의병 ‘8240’부대 1951년 7월 탄생한 ‘8240부대’ 동·서 해안 일대의 작전을 담당했던 ‘8240부대’는 약 2만 명이 활약했으며, 4천 회가 넘는 작전을 통해 적 병력 사살, 교량 및 북한군 병영시설 파괴 등 북한군과 중공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대원들 대부분이 적진을 잘 아는 북한 출신이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군번도 계급도 없이 목숨을 바쳤다. 국난이 일어날 때마다 들풀처럼 일어났던 무명의 의병처럼, ‘8240부대’는 6·25의병이었던 것이다. □ 미국에서 대서특필된 8240의 전과 – 미군 조종사를 구조한 故 이용섭 참전용사 1936년에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화보 잡지 [LIFE]! 이 라이프지에 1952년 7월 28일자로 ‘쉰츠도의 로빈슨 크루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내용인즉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조종사 쉰츠 대령이 평안북도 철산군 해상의 대화도에서 조난을 당하게 되는데.... 죽을 고비를 넘기며 37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다. 이 쉰츠 대령을 구조한 이들은 한국인이었고, 그들의 정체는 인근에서 미군 조종사들 구출 임무를 수행 중이던 ‘8240부대’ 예하 동키부대 대원들이었다. 이때 동키부대 대원들을 이끈 리더가 바로 故 이용섭 참전용사였다. 쉰츠 대령이 구조된 후, 직접 편지를 보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을 정도다. 쉰츠 대령이 故 이용섭 참전용사에게 보낸 서신이 방송사상 최초로 공개된다. □ 대한민국은 그들을 잊지 않았다 – 6·25 비정규군보상지원단의 보훈 노력 ‘8240부대’의 활약상과 고귀한 희생을 널리 알리고 그 헌신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2021년부터 6·25비정규군보상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총 5,000여 건의 보상 신청을 접수했고, 약 3,900명을 비정규군 공로자로 인정해 공로금을 지급했다. 단 한 분이라도 더 찾아 보상하기 위해 아주 작은 단서와 증거자료도 놓치지 않고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대증과 훈련증 밖에 없었던 8240예하 ‘토치라이트 부대’의 정금수 참전용사는 보상지원단의 끈질긴 검증 노력 끝에 공로자로 인정받았고, 사진 두 장 밖에 없었던 커크랜드 부대의 이상호 참전용사도 75년 만에 제대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8240부대’ 무명용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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